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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분단 70년 … 이젠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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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17회 작성일 19-04-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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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乙未年) ‘파란 양의 해’가 밝았다. 올 한 해는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에 따른 365일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넘어서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비단 광복·분단 70주년의 꺾어지는 해라서가 아니다. 우리의 위치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중간쯤 어디라면, 올해는 그 방향을 결정지을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지난 한 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청와대 문건 사태-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땅콩 회항 사건까지, 온갖 구조적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사회는 어수선했고 마음은 무거웠다.

 새해를 맞아 사방을 둘러봐도 희망보다는 온통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세계경제는 ‘뉴노멀’이라는 이름으로 저성장을 당연시하고 있다. 국제 원자재 시장의 균열과 급변동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 지반 위에 서 있는지 일깨워준다. 우리 외교는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과거로 회귀하는 일본의 틈새에 끼어 좀체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더 많은 문제와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청년 백수와 ‘장그래와 비정규직’ ‘자영업 몰락’으로 상징되듯 가계의 살림살이는 찌들어가고 있다. 협상과 타협의 정치는 증발했고 불통과 편가르기만 남았다. 비극적 사건을 맞으면 함께 힘을 모으기는커녕 양 극단이 충돌하면서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만 소모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0년간 우리는 압축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룬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와 정부, 민족을 앞세운 과거의 성공신화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는 무력했고, 정치권은 우왕좌왕하며 바닥까지 밑천을 드러냈다. 경제에서도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라는 전통적 정책수단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정부는 더 이상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남북 문제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식의 감상적 민족주의로는 대립과 긴장의 벽을 허물지 못함을 목도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대체할 새로운 중심세력과 에너지를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고. 우리는 감히 그 열쇠말을 ‘시민’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고자 한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은 수동적 의미의 국민이나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민중과 동의어가 아니다. 명망가 중심 시민단체의 시민과도 다르다. 우리가 앞세우는 시민은 탐욕의 절제라는 성숙한 교양을 갖추고, 스스로 참여하고 책임지며, 공공선(善)을 추구하는 세계인이자 창조인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새해 어젠다로 ‘이젠 시민이다’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정부와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발전을 꾀할 수 없고, 시민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우리 공동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우선 시대적 화두인 안전 문제부터 따져보자. 정부가 재해 컨트롤타워를 정비하고 법과 제도를 바꾼다고 저절로 안전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툭하면 반복되는 경제적 보상이나 공권력 투입, 강력한 처벌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안전은 본질적으로 정부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달린 문제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기 위치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해법이다.

 파탄 상태에 놓인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건전한 시민세력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종북(從北)과 반북(反北)의 극단적 대치 구도를 타파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의 상생적 관계로 이끌어야 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혐오가 북한 주민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 주민도 우리의 반쪽인 만큼 그들의 삶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올해 중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박근혜 정부로서도 국정동력과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광복과 분단 70년이 되는 만큼 남북관계에서 지워지지 않을 이정표를 세울 때가 됐다. 성숙한 시민성을 통해 남한 내부의 통합을 이룰 때 비로소 북한도 포용할 수 있는 통일의 토대가 마련된다. 중국과 일본의 각축 속에 세계의 화약고가 돼가고 있는 동북아지역에서 한국이 평화와 공존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과잉 민족주의를 순화할 수준 높은 세계 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

  한국 정치는 해방 이후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이식받았지만 시민의 부재(不在)라는 결정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생활 공동체의 일상적인 문제부터 다양한 정치·사회적 어젠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경험도, 능력도 부족하다. 정부와 정당의 실패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가 미로(迷路)를 헤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4년이나 5년에 한 번 투표권을 행사하고 정치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경제의 덩치에 걸맞은 민주주의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각성된 시민이 정치 과정에 참여해야만 질서 있는 개헌논의와 각종 정치개혁이 가능하고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도 이뤄낼 수 있다.

 올해도 한국 경제는 고질병인 저성장과 싸워야 한다. 저출산·저효율, 그리고 고령화·고비용이란 2저(低)-2고(高)를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경기를 살리면서 장기 지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은 여전하며 입법 환경도 나아진 게 없다.

 큰 선거가 없고 집권 3년 차를 맞은 올해는 구조개혁의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과제에 정권을 걸겠다는 의지부터 다져야 한다. ‘이 정부 임기 중엔 기틀만 닦을 테니 과실은 다음 정부에서 따달라’는 각오가 중요하다. 과도하게 늘어난 복지지출을 삭감하는 것은 괴로운 문제다. 하지만 시민들을 설득하고 동참을 이끌어내면 반발하는 이해관계 집단들에 대해 사회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때로는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시민들을 향해 피와 땀과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이젠 시민이다’라고 외쳐도 국가와 정부는 여전히 강하고 큰 실체다. 민족 역시 강렬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치와 정책 방향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의 요구와 맞지 않으면 얼마나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제 시민들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속출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다원화·다양화되고 있다. 더 이상 시민은 수동적 통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 주어(主語)가 되고 국가가 목적어(目的語)가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비판과 방관을 넘어 국가·민족과 상호 협력하는 신(新)시민시대를 열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뿌리고 밑거름을 뿌리는 것은 당연히 시민교육의 몫이다.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면서 탐욕을 절제하고, 관용과 배려가 몸에 배도록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지 않고 지구촌 전체를 바라보는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들이 쑥쑥 자라나야 한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시민의 밝은 눈으로, 시민의 입장에서 공동체의 크고 작은 사안을 판단하고 방향을 정할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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